매년 2월의 마지막 날은 ‘세계 희귀질환의 날’이다. 전 세계 약 7,700개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는 희귀질환은 의학 발전에 비례해 증가하는 추세임에도 사회적 인식, 진단 및 치료 환경 등의 개선 해법은 여전히 요원하다. 이에 희귀질환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깨우고 인식 개선을 돕는 것이 이 날의 의의를 되새기는 길일 터. 

이에 본지는 국내 희귀질환 진단 및 치료 현실의 면면을 들여다보기 위해 아주대학병원 유전학클리닉 희귀질환센터 손영배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아주대학병원 유전학클리닉 희귀질환센터 손영배 교수
아주대학병원 유전학클리닉 희귀질환센터 손영배 교수

희귀질환 치료의 선봉에 있는 손 교수는 최근 유전성 희귀질환 ‘파브리병’의 사례에 주목하고 있었다. 올해 1월부터 신생아 선별검사에 ‘치료제가 있는 리소좀 축적 질환 항목’이 추가됨에 따라 파브리병의 조기 진단과 치료 기회가 마련되었기 때문. 손 교수는 이번 급여 확대 조치가 비단 파브리병에 국한된 기회로 그치지 않고, 치료제가 있는 희귀질환의 조기 발견과 치료를 위한 여건 개선의 마중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희귀질환 ‘파브리병’, 조기진단 과제 풀리나

파브리병은 리소좀에 있는 알파 갈락토시다제 A라는 효소가 부족해지면서 당지질이 축적되는 유전성 희귀질환이다. 신부전, 심부전, 부정맥, 비대심근병증, 뇌졸증 등의 치명적인 합병증이 동반돼 삶의 질을 현저히 저하시키고 목숨까지 위협한다. 심각한 증상 발현과 이른 사망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서는 조기 진단과 치료가 필요한 데, 다행히도 2024년 1월 1일부터 리소좀축적병에 대한 신생아 선별 검사의 급여가 확대 적용돼 조기 진단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손교수는 “파브리병은 치료제가 있는 희귀질환이므로 조기 발견과 치료 시작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라고 강조하며, 신생아 시기부터 질환의 유무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급여 확대 적용을 반겼다. 더불어 신생아를 통해 확인된 파브리병이 family screening을 통해 가족 내 또 다른 파브리병 환자를 발견할 수 있다는 점 역시 긍정적이라고. 

다만 해결해야 할 과제도 남았다. 손 교수는 “전형적 파브리병이라 할지라도 증상이 신생아시기부터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진단 후 치료까지 긴 기간동안 환자에게 고통이 수반될 수 있다”라는 이면을 전하며, 신생아 선별검사를 통한 파브리병 확진 후의 후속조치에 대한 대책과 방법을 강구해야 함을 강조했다. 

편의성 높인 경구제 ‘갈라폴드’ 두고도 주사제 선택, 이유는? 

그렇다면 진단 후 치료 과정은 어떨까. 손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유전자 검사를 통해 파브리병이 확진되면 보험 급여 요건이 충족될 경우 효소대체요법을 시행해 환자의 체내에 부족한 알파갈락토시다제 효소를 보충해 주는 주사요법을 시작합니다. 2019년부터는 약물학적 샤페론이라고 하는 경구용 치료제도 사용이 가능해졌고, 환자 증상에 따른 보조 요법들도 함께 시행합니다.”

손 교수의 설명대로 파브리병 치료제는 크게 주사제와 경구제로 구분된다. 먼저 주사제는 효소대체요법으로, 외부에서 환자의 몸에 부족한 효소를 채워주는 치료법이다. 이는 효소 자체를 외부에서 주입하는 것이므로 효소활성도가 높아지고 체내 축적된 Gb3의 분해에 도움을 준다는 장점이 있지만, 2주마다 병원에 방문해서 짧게는 40분, 길게는 4시간 정도 정맥주사를 해야 한다는 점이 큰 불편함으로 남았던 바 있다. 이에 반해 경구제 형태인 ‘갈라폴드’는 2일에 1번씩 일정 시간에 환자가 약을 복용하면 되기 때문에, 빈번한 병원 방문과 긴 시간의 내원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환자의 편의성과 삶의 질을 크게 개선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계는 있다. 모든 파브리병 환자가 경구용 약제인 갈라폴드를 복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갈라폴드에 반응성이 있는 유전자 변이 (순응변이 유전자)를 가진 파브리병 환자에서만 사용이 가능하다는 것. 더불어 갈라폴드의 경우에는 아직까지 ERT를 1년 선행한 후에만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2차 치료제로 지정되어 있어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손 교수 역시 “갈라폴드는 현재 43개국에서 허가를 받고 파브리병 환자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이 중 ERT 사용에 대한 선행조건이 있는 국가는 한국과 호주 두 곳 뿐”이라며, “호주의 경우에도 최근 PBAC (Pharmaceutical Benefits Advisory Committee)에서 갈라폴드 사용 전 ERT 선행 조건을 제외할 것을 결정하여 1차 치료제로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가장 최근 갈라폴드 허가를 받은 대만의 경우에는 순응변이 환자에서는 오히려 1차 치료제로 갈라폴드를 사용하고 2차 치료제로 ERT를 사용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손 교수는 “실제로 일부 환자들은 파브리병 치료에 대한 급여 조건이 만족하는데도 주사요법의 부담으로 치료 시작을 지연하는 경우도 있다”라며, “이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빠른 시일 내 갈라폴드가 1차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전했다.  

희귀질환, 갈 길 멀지만 개선 기대 놓지 말아야

최근 주목받고 있는 희귀질환인 파브리병의 사례를 대표해 손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외 모든 희귀질환 치료에 있어 가장 필요한 부분은 무엇일까. 

손 교수는 이에 대해 “환자의 관심과, 의료진의 전문성”을 꼽았다. 환자가 본인의 질환에 대해 숨기지 않고 관심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고, 의료진 역시 질환에 대한 관심과 전문성을 가지고 진단을 하더라도 약 10~15년 여의 진단 방랑이 예고된다는 이유에서다. 

다행인 것은 최근 검사 방법의 발달로 이전보다 정확하고 빨라진 검사가 가능하므로, 의심이 되는 경우 전문기관을 통해 빨리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손 교수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급여 조건의 개선도 시급한 과제로 꼽았다. 손 교수는 파브리병의 예를 들며 “아직 국내에서는 파브리병을 진단받더라도 일정 급여 조건을 만족할 경우에만 치료를 시작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급여 기준을 만족하기 위해서는 파브리병과 연관된 기관에서 장기 손상이 확인되어야 하는데, 조기치료가 무엇보다 중요한 질환에서 장기손상이 확인된 시점부터 치료를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료진으로서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또한 “남성과 여성의 급여 기준도 다른 부분이 있어서, 여성에서의 파브리병의 심각성과 중증도에 대하여 과소평가되는 것도 아쉬운 점”이라고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손 교수는 “파브리병을 비롯한 희귀질환은 많은 의료진과 연구진들의 노력으로 치료 환경이 개선되고 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라고 강조하며, “치료가 가능한 희귀질환을 진단받은 환자들이 조기에 치료를 받을 수 있는 여건이 조속히 자리잡기를 바란다”라는 현장의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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