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클리닉 최형기 원장 ('헌집줄께 새집다오' 저자, 연세의대 비뇨기과 교수 역임)
성공클리닉 최형기 원장 ('헌집줄께 새집다오' 저자, 연세의대 비뇨기과 교수 역임)

한번은 주부클럽 강연에서 ‘합병증과 성 기능 장애’를 주제로 특강을 한 일이 있다. 강의가 끝나자 40대 중반의 부인이 면회를 요청했다.

10년 전부터 당뇨병을 앓아 온 남편이 요즘 들어 성 기능 장애를 보이는데, 당뇨병이 원인이 돼 발병한 것은 생각지도 못하고 심한 우울증에 빠졌다는 것이다.

그녀 역시 강연을 듣기 전까지는 그 같은 성 트러블이 당뇨 후유증인 줄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당뇨병은 몸 안의 혈당을 낮추는 인슐린 분비가 원활하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지요. 초기에 의사 지시대로 혈당 조절을 잘하면 정상인과 같이 행동할 수 있지만, 행여 잘못해 합병증이라도 생기면 자율신경계가 자유롭지 못하게 되면서 발기불능 상태에 이릅니다.”

사태가 그쯤 되면 자력으로는 거의 치료가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진 마십시오. 적절한 치료로 제 기능을 찾을 수 있으니까요. 자가 주사요법도 있고, 일반 치료로 고치기 힘들 때는 그에 적합한 수술도 생각해 볼 수 있겠고요.”

“정말 가능합니까? 합병증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어요. 남편과 함께 오겠습니다.”

 

부인이 남편을 겨우 달래 병원을 찾은 건 한 달이 훨씬 지나서였다. 부인의 설득에 못 이겨 한번 속는 셈치고 끌려온 듯한 환자는 부인이 처음 그랬던 것처럼 ‘정말 가능하겠느냐?’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10년간 앓아 온 당뇨병이 차도를 보이기는커녕 성 기능 장애까지 일으키는 지경에 이르고 보니, 자신의 모습이 자꾸만 초라해지고 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죄책감마저 든다고 했다.

 

환자와 오랜 대화 기간을 가지면서 몇 차례 기본 검사를 해보니 식전 혈당 180㎎/㎗, 식후 2시간 250㎎/㎗으로 혈당 조절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시청각 자극검사 결과와 성 신경·혈관계 검사에서는 이미 기질적으로 완전 불능이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어깨가 축 늘어진 채 피로해하는 모습이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어쨌든 그 상태로는 수술받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래서 내과의 협력으로 우선 당 조절부터 시작했다. 공복 시의 혈당이 최소한 130㎎ 이하로 내려와야만 수술이 안전하다.

 

창창한 40대를 당뇨병과 싸우며 세월을 허비해야 했던 K 씨. 어느 정도 몸을 추스른 뒤 세조각 팽창형 보형물 삽입 수술을 했다. 얼마 후 모처럼 꼿꼿이 서는 생명을 온몸으로 느껴서인지 다소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다.

“집사람 힘이 컸어요.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병원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게 무슨 문제가 있느냐고 벅벅 우겨댔으니까요.”

“늦게라도 아셨으니 다행입니다. 부인 덕에 새 사람이 됐으니 이제 오랜만에 데이트 좀 하세요. 운동도 열심히 하시고요. 운동처럼 좋은 보약은 없답니다.”

 

둘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공유 개념의 상실, 그래서인지 일단 남편에게 성 기능 장애가 나타나면 아내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다. 물론 그 내면을 파고들면 남편 건강에 대한 우려도 깊겠지만.

K 씨는 “사실 성 문제만큼은 단순히 나 홀로 앓고 마는 병이 아니더라고요”라고 말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아내의 병이다. 기질적인 성 장애로 절망 속에 사는 남편보다 더 마음 아프고 속상한 병, 무심한 남편 때문에 졸지에 화병마저 얻게 되는 아내의 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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